로마제국은 세계사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로, 황제들의 화려한 업적과 비극적인 운명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기원후 9년~79년)는 비귀족 출신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플라비우스 황조를 세운 독특한 인물입니다. 그는 평민의 신분을 딛고 로마제국의 9대 황제로 등극했으며, 그의 삶은 치밀한 전략, 유머, 그리고 놀라운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에서는 베스파시아누스의 일대기를 깊이 탐구하고, 그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출생과 초기 생애: 평민에서 군인으로
베스파시아누스는 기원후 9년 11월 17일, 이탈리아 중부 사비니 지역의 작은 마을 팔라크리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티투스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로, 아버지 티투스 플라비우스 사비누스는 세리(세금 징수원)였고, 어머니 베스파시아 폴라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 계층인 원로원 가문과는 거리가 먼 평민 신분이었던 그는, 형 사비누스를 따라 공직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젊은 시절, 베스파시아누스는 군사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기원후 36년, 그는 트라키아 지방에서 장교로 복무하며 군사적 능력을 키웠고, 이후 회계 감사관으로 크레타 섬과 키레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치밀한 성격과 부지런함은 점차 두각을 나타냈고, 기원후 39년에는 조영관, 이듬해에는 법무관으로 선출되며 로마 정치 무대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 시기 그는 기사 계급 출신의 도미틸라와 결혼했으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그리고 딸 도미틸라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도미틸라는 그가 황제가 되기 전에 사망했고, 이후 그는 해방 노예 출신인 카이니스라는 여성을 동반자로 삼아 살았습니다.
군사적 성공과 네로 시대의 굴욕
베스파시아누스의 경력에서 큰 전환점은 기원후 41년,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세에 찾아왔습니다.
클라우디우스의 측근 나르키소스의 천거로 그는 게르마니아의 제2 아우구스타 군단장으로 임명되었고, 브리타니아 원정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의 군사적 재능은 네로 황제 시기에도 빛을 발했는데, 특히 기원후 66년 유대 독립 전쟁(제1차 유대-로마 전쟁)을 진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갈릴래아 지역을 점령하고 유대 지도자 요세푸스를 포로로 잡았으며, 요세푸스는 이후 로마 시민권을 얻고 베스파시아누스의 통치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네로 황제와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기원후 67년, 네로의 그리스 방문 중 연회에서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의 시 낭송을 들으며 졸았다는 이유로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잠시 유배되어 양봉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굴욕적인 순간은 그의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일화로, 훗날 황제가 된 후에도 이를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네 황제의 해와 황제 즉위
기원후 68년, 네로의 자살로 로마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른바 "네 황제의 해"(Year of the Four Emperors)로 불리는 이 시기에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가 차례로 황제 자리를 놓고 다투었고, 결국 베스파시아누스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유대 전쟁 중이던 그는 군대의 지지를 받아 기원후 69년 7월 1일 황제로 선포되었고, 기원후 70년 로마에 입성하며 권력을 굳혔습니다. 그의 즉위는 비귀족 출신으로서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최초의 사례로, 플라비우스 황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내전으로 황폐해진 로마를 재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세금을 강화하고, 네로가 남긴 황금 궁전 터에 콜로세움(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평민과 속주민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며 로마의 사회적 기반을 넓혔습니다.
재미있는 사건 1: 소변 세금과 유머 감각
아들 티투스가 이 정책을 비판하며 "더러운 돈"이라 불평하자, 베스파시아누스는 동전을 그의 코앞에 대며 "냄새가 나느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유머러스한 반응은 그의 실용주의와 재치 있는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표현은 그의 이름과 함께 회자됩니다.
재미있는 사건 2: 죽음 직전의 농담
로마에서는 황제가 사후 신격화되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는 이를 비꼬며 농담을 던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일어나 있자! 지금부터 나는 신이 될 거야!"라 외치며 선 채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로마인 특유의 냉소적 유머를 잘 드러냅니다.
재미있는 사건 3: 콜로세움과 재정 재건
재정난 속에서도 이를 완성하기 위해 그는 토지를 소유하고도 집을 짓지 않는 사람들의 땅을 몰수하는 과감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사후 한 희극에서는 그가 관에서 벌떡 일어나 "10만 세스테르티우스만 주면 티베르 강가에 나를 버려도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상연될 정도로 그의 실용적 태도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유산과 역사적 의미
베스파시아누스는 기원후 79년 6월 23일 로마에서 사망하며, 아들 티투스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약 10년간 이어졌지만, 로마제국에 남긴 영향은 지대합니다.
그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재정을 튼튼히 했으며, 콜로세움을 통해 로마의 상징을 세웠습니다. 또한 비귀족 출신 황제로서 평민과 속주민의 참여를 장려하며 로마의 사회적 다양성을 키웠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플라비우스 황조는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를 통해 이어졌고, 로마는 잠시 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용적 통치와 유머는 후대에까지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인색한 황제"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을 재건한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결론: 비귀족 황제의 놀라운 이야기
베스파시아누스는 비귀족 출신으로 시작해 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일대기는 군사적 성공, 정치적 혼란 속에서의 결기, 그리고 유머와 실용주의로 가득 찬 통치로 요약됩니다.
소변 세금, 죽음 직전의 농담, 콜로세움 건축과 같은 재미있는 사건들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세계사 속 로마제국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로마제국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비귀족 출신의 성공, 플라비우스 황조의 시작 등은 그의 삶을 검색하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키워드로 남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권력과 유머가 얽힌 살아있는 역사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영감을 줍니다.